행사는 얼굴만 보면 익히 알 수 있는 수많은 유명영화인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손쉽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익숙한 성명서 발표후에 그 유명한 영화인들은 거의 모두 사라졌다. 물론 방구석에서 비디오를 보면서 당장 레포트 걱정해야하는 우리들보다 그네들은 바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뭔가 사진만 찍고 간 것만 같은 생각에, 그토록 열렬히 달려와 우루루 빠져버린 모습에 기분이 상하기도 했었다.
그런 상한 기분에도 우리들은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그 때 후배가 얘기했다. "오빠.. 정말 추워요..." 마침 내 앞에는 사회적인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시는 영화배우 M씨가 다른 유명영화인들과는 달리 그자리를 끝까지 지키고 계셨다. 나는 어린마음에 괜한 삐뚤어진 근성으로 M씨에게 들으라는 듯 후배에게 얘기했다.
"어차피, 종놈의 자식들은 끝까지 달달 떨고 지키고 앉아있는거야. 너나 나나 피차 일반 아니냐. 팔자 좋으면 가는거지." 그 말을 M씨는 들었을까. 당연히 들었을 것으로 짐작되었다. 그런 그분도 바로 말을 건네기는 계면쩍었는지 잠시 시간을 보내고는, 방금 말한 이야기의 여운이 가실 때즈음에 은근슬쩍 나에게 말을 건넸다. "참 춥죠?" 어린마음의 삐뚤어진 기운은 그 말한마디에 녹을만큼 얄팍하고도 즉물적이었다.
이 모습에서 한국영화의 전체를 읽어내는 것은 과욕이겠으나, 나는 이 모습이 그 전의 한국영화계와 그 이후의 10년동안에도 바뀌지 않을 어떤 모습이라는 것은 읽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한국영화계는 이후 10년동안 만들어질 경제구조와 매우 흡사한 길을 걸었다. 영화계는 부흥했으나, 정작 부흥한 사람들은 따로 있었다. 경기가 좋아지고 시장여건이 좋아질 때마다 영화계는 극심한 양극화를 향해서만 달려갔다. 그리고 가시적으로 노출되는 긍정적인 여건에 비해 노출되지 않는 부분의 부정적인 여건은 여전하기만 했다. 잘못되면 다 자신의 재능을 탓하라며 무한경쟁을 부추기던 업계는 결국 스텝들의 피땀어린 노고와 희생, 그것도 경제적인 희생아래에서 차곡차곡 피를 먹고 성장했다.
영화계가 살림살이가 나아졌다고 해도, 제작여건의 불투명성과 불공정성은 여전했다. 그럼에도 모두들 '나도 언젠가는' 이라는 얄팍한 희망에 기대어 서로의 어깨를 짖누르는 이 모순들을 모른척했다. 벗어나면 그만이라고. 언젠가 성공하면 배우들 위에서 호령하고 외제차를 구르리라는 그 헛된 희망을 안은채. '희망고문'을 가열차게 받으면서도 나는 달라라고 외치며 시스템을 보지 못한채 자기자신만을 채찍질 하고 있었다.
한류가 왔을 때에도 당장 팔릴 것만 생각해 좋은 컨텐츠를 확보하지 못한채 붐이 흘러갔다. 잘만든 영화 드라마를 개발한다기보단, 선행되서 팔렸던 것과 비슷한 것을 얼굴팔린 배우들과 단기간에 만들어 팔아 재꼈다. 그러다보니 한국것도 별거 아니네라는 이미지만 가득해져 한류의 붐은 꺼져갔다. 근시안적인 이익추구가 장기적인 이익을 해치는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더 좋은 시장을 개척할 수 있었을 때에도 당장의 돈 몇푼에 치고빠지는 장사꾼들 때문에 문화사업은 외국에게도, 국민들에게도 싸구려 저질 핍쇼수준으로 이미지가 점철되어 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경기가 좋았을 때에도 어떤 일체적인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은채 10여년이 흘렀다. 그리고 이제 사람들은 한국영화에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 오랜세월 간신히 이루어낸 스텝노조도 경기가 안좋아지는 바로 그 끝자락에 맞물려 탄생했다. 그리하여 이기적인 이익단체라는 따가운 눈살을 받게 되었다. 망친사람은 따로 있는데 이기적이라고 생욕을 들어처먹게 생긴것이다.
정신력 하나만 가지고 축구하던 시절은 지났듯이, 열정하나만 가지고 영화하기에는 난국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지만 미디어가 부풀린 영화계의 자화자찬 시나리오에 국민들은 이제 영화인들은 살만하다는 생각을 품은 것 같았다. 그래서 스크린쿼터의 위기가 불거져나올 때에도 마치 양치기 소년마냥, 아니면 죽지도 않고 돌아온 지긋지긋한 각설이마냥 영화인들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평균 임금의 10분의 1도 안되는 금액으로 살고있는 찌질한 영화인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에서있는, 미디어의 주목을 받는 영화인들의 입으로 그제서야 호명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열정말고는 시체나 다름없는 영화인들이 스크린쿼터 축소반대에 대한 근거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호명말고는 그어떤 것도 없었다. 그저 영화계가 어려우면 그런 힘든 영화인들은 진짜로 죽는 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경기가 좋을 때에도 개선될리 없는 제작시스템을 겪어본 영화인들은 그들의 가증에 깊은 증오를 품었다. 영화계가 극심한 양극화현상을 빚는 것은 경제적인 측면도 있지만, 그들이 어딘가에 속해있는 지. 그 지형도에 따라 서로를 바라보는 정서또한 양극단으로 갈려지고 있었다. 영화스텝이 강력하게 자신의 권리를 찾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너 말고도 할 사람 많다" 이다. 우리의 경제적 성장을 이뤄냈던 그 무한경쟁이 영화판에서도 그대로 답습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효율적이고, 모욕적인 그 모든 처사에서도 그들은 참았다. 언젠가는 좋은 날이 있을거라 자위하면서.
영화계가 이전보다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시대가 변화된 그 폭에 비하면 변화의 축에도 끼지 못한다. 그리고 다시 찾아온 영화계의 불경기. 여전히 혹세무민은 진행중이다.
'괴물'의 천만성공 뒤에 서있는 배급의 독과점은 이제 쏙 들어간 얘기이다. '강철중'과 '놈놈놈'의 융단폭격식 배급도 이제는 '한국영화 부흥의 신호탄'이라는 이름아래 묵인될 뿐이다.
여전히 시스템은 바뀐게 없다.
두려운 것은 이 것이다. '강철중'과 '놈놈놈'이 흥행해봤자 그간 버려왔던 한국영화의 이미지를 혁신적으로 살리지도 못할 것이며, 그동안 투자자들이 느낀 한국영화에 대한 불신을 일순간에 없앨 수도 없다는 것이다. 또한 그 흥행이 고스란히 고생했던 모든 이들에게 공평무사하게 돌아가 힘들게 살고있는 영화인들에게 작은 보탬이 될지도 미지수이다.
그럼에도 무서운건, '강철중'과 '놈놈놈'이 망한다면 한국영화가 치명적인 불황에서 당분간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이다.
잘되어도 좋은건 별로 없지만, 안되면 크리터진다. 이 얼마나 믿지는 장사이며, 암울한 판인가?
영화계를 넘어서, 엔터테인먼트가 승자승의 법칙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시스템의 개선이라는 것이 일하지도 않고 등록된 영화인에게 연금을 지급하자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 것이다. 영화를 하고 있는, 당장 일을 하고 있는 영화인들에게 적절한 생활의 질을 보장할 수 있도록 해야하고, 그들에게 정당한 처우를 약속해야 한다. 열정만으로 '네 옆의 친구를 밟고 올라서도록 해'라며 부추길 때는 이미 지났다. 천만감독이거나 해외영화제 그랜드슬램이라는 꿈을 꾸기전에 그들이 살고 있는 월셋방의 방세를 낼수 있도록, 땀에 절은 그들의 옷을 빨 수 있는 세제를 살 돈을 벌 수있도록 해야할 것이다.
모 배우는 한 때 고가의 개런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배우라는게 한 때라서 어쩔 수 없는..."
세상 모든 직업중에 한 때가 아닌 직업이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자신의 배만 불릴게 아니라 시스템 전체를 고민하고 그 시스템을 살릴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하는 것.
그 것은 연대라는 이름에서 출발한다. 가식적일 수도 있겠지만, 영화인이라는 연대아래에서 우리의 판을 우리가 뜯어고쳐, 더 나은 판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없다면 한국영화가 이대로 주저앉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당장 내 개런티를 불리기 보다는 모두의 개런티를 조금씩 불리는 것.
숙주의 피를 한꺼번에 빨게 아니라, 숙주가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것. 바로 그것이 우리가 서 있는 기반을 조금이라도 안전하게 만들 수 있는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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